초등학교 때 일이었다.
책 읽고 독후 활동으로 포스터를 그려 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난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책도 읽지 않은 채 수레바퀴를 그려갔던 기억이 있다.
그게 내가 이 책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였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읽고나니 이제야 수레바퀴의 의미에 대해 알 것 같다.
독일의 한 시골 마을,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소질을 보인 한스는 아버지, 학교 선생님, 그리고 마을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헤카콤베'를 2등으로 통과하며 그 시절 전국의 가장 똑똑한 아이들이 모이는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한스는 같은 방 친구인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며 인생에 전환점을 맞게 된다.
모범생 한스는 하일너의 반항적인 행동에 묘한 매력을 느끼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하일너는 지속적인 문제 행동으로 금고형이라는 벌을 받게 되고 교장선생님은 아무도 그와 어울리지 말 것을 선언한다. 한스는 자신도 눈 밖에 날 것을 염려하여 하일너와 거리를 두는데 하일너는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한스 본인도 자괴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같은 방을 쓰는 한 친구가 물에 빠져 죽는 사건이 있었는데, 한스는 그 불행한 사건 이후로 더욱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간다.
한스 기벤라트는 목이나 발에 아픈 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불행한 그날 이후로 더욱 진지하고 성숙해 보였다. 아마도 그의 내면에서 커다란 변하가 일어난 것 같았다. 이제 그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p.138)
이를 계기로 한스는 하일너와 다시 가깝게 지내면서 공부를 점점 소홀히 하게된다.
학교의 억압적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하일너는 결국 학교를 떠나고,
이후 혼자가 된 한스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여 요양이라는 명목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들의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왜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인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그에게 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주었는가? 왜 시험이 끝난 뒤에도 응당 쉬어야 할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는가?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길가에 쓸진 이 망아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을의 자랑이었던 그가 불명예스럽게 돌아왔다.
그는 건강을 추스리기 위한 얼마간의 여유를 가졌다. 그에게 있어 첫 휴식이 아니었을까.
그 시간동안 마을을 이곳저곳 거닐며 어린시절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가슴 설레는 여자와 만나게 되는데 그 여자는 한스의 마음에 불만 지피고 말도 없이 떠났다.
한스는 기계공이 되기로 했다.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어느날, 어린시절 친구이자 지금은 기계공이 된 아우구스트와 그 동료들과 함께 거나하게 술을 마신다.
짐짓 어른이 된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다음날 한스는 물에 빠져 죽은채 발견되었다.
전도 유망한 신학교 학생 다음으로 선택한 것이 기계공이라니.
지금이라면 그 똑똑한 머리로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할텐데, 돌고 돌아 결국 자기가 하찮게 여긴 육체노동자가 된 상황에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이 병들어가고 있던 무력한 한스.
경중은 다르겠지만 지금도 한스와 같은 아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1906년에 발표된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보았다.
지금도 아이들의 개성을 무시한 주입식 교육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한다.
학교 선생은 자기가 맡은 반에 한 명의 천재보다는 차라리 여러 명의 멍청이들이 들어오기를 바라게 마련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선생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절제한 인간이 아닌, 라틴어나 산수에 뛰어나고, 성실하며 정직한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p.142)
한 아이를 파멸로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른들의 친절하고도 무절제한 억압, 기대라는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던 한스는 결국 죽음으로써 자유로워졌다.
우리는 인생에서 저마다 자신들의 수레를 끌고간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더 멀리,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걸어갈 수 있도록 그들의 수레를 가볍게 해주는 것이 우리들의 몫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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